발효의 신비한 힘은 발효식품의 맛을 높이고 영양을 증대시켜 장수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발효는 오늘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키타에서 발효는 수백 년 간 계속되어 온 삶의 방식이다. 아키타는 아키타코마치(쌀 품종)을 비롯해 산과 바다에서 풍부한 식재료가 나는 축복 받은 지역이지만, 한편으로는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한다.
세계 각지 마다 발효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일본, 특히 아키타 지역의 발효방식의 핵심은 누룩 곰팡이(aspergillus oryzae)를 촉매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아키타 지역의 발효 문화는 장인들의 누룩 균 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수 백 년 동안 깊이를 더해왔다.
미소(일본식 된장), 간장, 사케, 하타하타(도루묵) 초밥은 아키타의 발효 식품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아키타의 이런 음식들을 맛보고 구매하는 것 이상으로 발효식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 음식들을 만드는 장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전통의 토대와 현대적인 디자인 감성을 하나로
해질녘, 불빛이 희미해지면 야마모 양조장의 정원으로 향하는 문은 카페에 달린 우아한 샹들리에와 전통적인 일본 정원 특유의 분위기로 반짝인다.
야마모 7대 소유주인 다카하시 야스시 사장은 “이 정원은 증조부가 꾸미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사장은 전통적인 정원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찍힌 세피아 톤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원의 한 곳을 가리켰다.
“이 사진에서 증조부께서 앉아 계신 곳은 아버지가 증조부를 위해 지은 별관 앞이다. 외조부는 사진 속에서 숲을 마주 보고 있는데, 이 숲에는 물의 신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온다.”
1867년 다카하시 사장의 조상은 미나세가와 강의 물을 양조에 이용하기 위해 간장과 미소를 만드는 양조장을 설립했다. 양조장 정원에는 식량의 터전이 되는 물의 신에 대한 경의가 담겨 있다.
건축공학 공부를 마치고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온 2006년, 다카하시 사장은 27살의 나이로 야마모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완벽히 보존된 7개의 양조실에는 그의 디자인 감각과 다국적성이 메아리 친다. 양조장의 드라마틱한 나무 기둥과 흙으로 만든 전통적인 바닥에서는 시크한 현대적 감각이 느껴진다. 양조장에는 그 밖에도 세련미가 느껴지는 카페와 오픈 주방, 우아한 갤러리, 그리고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상을 수상한 야마모의 상품 패키지 등 그가 새로 더한 공간이 있다.
다카하시 사장은 양조장 투어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미소와 간장을 만드는 양조장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이 투어에서는 각 양조실을 방문하며 여러 단계를 거치며 간장과 미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다카하시 사장은 “발효의 세계와 지역의 역사, 문화를 전세계와 공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투어에서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는 양조실인 ‘무로’는 가장 중요한 첫 단계인 누룩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누룩을 만들 때는 번식시키려는 균을 만듦과 동시에 나쁜 균은 번식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진행된다”고 다카하시 사장은 말했다.
다음 방인 모로미구라는 누룩, 찐 콩, 볶은 밀, 물을 섞은 모로미(전국)가 들어가 있는 나무통으로 가득하다. 다카하시 사장은 “이 양조장에 살고 있는 전통 효모가 통 안으로 들어가 맛을 낸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모로미구라보다 훨씬 작은 양조실에서는 미소나 간장이 담긴 시험용 통들이 신상품 개발을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절되고 있었다. 작은 통들은 모두 가능성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날 발효되고 있던 미소에서는 다양한 효모로 인해 매력적인 트로피컬 향이 났다.
다카하시 사장은 “이노베이션은 지속가능성의 핵심”이라며 “가업을 물려받은 뒤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전통을 지켜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를 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가 필요하다”
다카하시 사장이 최근 야마모의 공기 중에 서식하는 새로운 효모를 발견한 것은 이런 자유로운 사고 덕분이다. 그는 나에게 말하며 웃었다. 미소와 간장을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발견은 천문학자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 없다. 다카하시 사장은 이 새로운 효모가 무척 흥미진진하다고 말했는데, 이 효모로는 사케는 물론 와인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원 산책 후, 투어는 야마모의 카페에서 마무리된다. 이곳에서는 양조장의 전통과 새로움을 맛볼 수 있다. ‘아마시오’간장은 야마모를 대표하는 간장으로, 저염에 부드러운 단맛이 균형을 이루는 아키타식 간장이다.